(옥천=연합뉴스) 박병기 기자 = 충북 옥천의 한 고택(古宅)에서 1936년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한반도 형태의 무궁화 자수(刺繡)가 발견돼 눈길을 끈다.
29일 충북 옥천군 옥천읍 문정리 정태희(54) 씨에 따르면 최근 집 안채를 보수하던 중 다락에서 명주천 위에 오색실로 수를 놓은 한반도 모양의 무궁화 자수를 발견했다.
가로 35㎝, 세로 45㎝의 크기의 이 자수작품에는 조선 13도(道)를 상징하는 듯 활짝 핀 무궁화 13송이가 새겨져 있다. 또 자수 오른쪽 하단에는 '일년가절최청양 천이차화만지향(一年佳節最靑陽 天以此花滿地香)'이라는 문구와 함께 제작연도와 작가이름으로 보이는 '1936년 석례작(錫禮作)'이라고 새겨져 있다.
정 씨는 "3년 전 매입한 집 안채를 보수하는 데 다락 안에서 먼지 쌓인 사각 나무틀에 담긴 자수작품과 함께 광목에 새긴 태극기가 나왔다"며 "독립운동을 하던 분의 유물 같아 안방에 잘 보관해뒀다"고 말했다.
일제시대 국고국장(한국은행장)을 지낸 오윤목 씨가 살았다고 알려진 이 집에서는 작년 사랑채 마루 아래서 일왕(日王)을 추모하는 '명치천황어일주년제기념비(明治天皇御一週年祭紀念碑)'라는 문구가 새겨진 비석이 발견됐었다.
민족문제연구소 박한용(48) 연구실장은 "한일합방 뒤 1930년대까지 독립운동가 남궁억(1863~1939) 선생 등이 일제의 벚나무 보급에 맞서 무궁화 지키기 운동을 벌였고 배화학당 등에서는 무궁화 자수보급도 이뤄졌다"며 "당시 배화학당에서 보급된 무궁화 자수 밑그림도 무궁화 13송이를 새기도록 도안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1930년대 중반은 일제의 황국식민화 정책이 극에 달한 때로 공개적으로 무궁화를 기리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며 "자수 하단에 새겨진 '1년 중 가장 아름다운 계절 하늘은 이 꽃으로 땅에 향기를 가득 채운다'는 뜻의 문구를 미뤄 볼 때 석례라는 작가가 집안에서 몰래 해방을 염원하는 간절함을 담아 만든 작품 같다"고 덧붙였다. 조선시대 전통한옥인 이 집은 1856년(철종 7년) 건립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연합뉴스 2008.2.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