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주의 무너뜨린 이정현과 순천.곡성 주민들은 "민주주의의 영웅"
- 민주주의 정착위해 약속한 폭탄예산 대통령 예비비라도 지원해 약속은 꼭 지켜주길-
30일 치러진 전남 순천·곡성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가 50% 가까운 득표율로 당선됐다. 이 당선자는 지난 총선 때 광주 서을(乙)에서 득표율 39.70%로 선전한 데 이어 이번에 기어코 지역주의의 장벽을 넘었다.
그의 당선은 철벽같던 지역주의의 한 귀퉁이를 허물어버린 기념비적인 일이라고 할 만하다. 선거구제가 1구 2인 선출에서 1구 1인 선출로 바뀐 1988년 13대 총선 이후 광주·전남 지역에서 현 여권 후보가 당선된 것은 이 당선자가 처음이다. 전북까지 넓혀 호남 지역 전체로 봐도 1996년 15대 때 군산을(乙)에서 강현욱 후보가 당선된 이래 18년 만이다.
2년 전 국회의원 총선 때 이 지역에서는 통합진보당과 민주통합당 후보가 1·2위를 했고 그들이 가져간 표는 무려 97.01%였다. 새누리당 후보의 득표율은 불과 2.97%였다. 대선 때도 박근혜 후보는 순천 8.88%, 곡성 11.10%를 얻는 데 그쳤다. 지난 지방선거에서는 새누리당이 순천시장과 곡성군수 후보조차 내지 못했다. 이번에 이 당선자가 얻은 득표율은 믿기 어려울 정도다.
지역주의는 망국병(亡國病)이라고 해왔을 정도로 정치 왜곡의 주범이다. 특히 호남과 대구·경북에서는 특정 정당 공천만 받으면 득표율 70~80%가 보장되는 비정상적 상황이 10~20년 이어졌다. 그 때문에 이 지역 출신 정치인들은 국민을 바라보는 정치가 아니라 당내 공천권자의 뒤만 쫓는 정치를 해왔다. 그 결과는 상대를 타도해야 할 적(敵)처럼 몰아붙이는 극단적 대결 정치였다. 이런 적대적 지역주의의 대결 구도에 좌·우 대립이 한 치 차이도 없이 고스란히 겹치면서 치유 자체가 불가능해 보이는 지금 상황을 만들었다.
이 당선자는 박근혜 대통령의 최측근이다. 그는 이번에 이런 점을 내세워 지역에 '예산 폭탄'을 쏟아붓겠다고 했다. 이런 약속이 유권자들의 마음을 일부 움직였을 수는 있으나 그렇다고 해도 그의 당선이 갖는 의미를 축소할 수는 없다.
지난 6월 대구시장 선거에서 새정치연합 김부겸 후보는 40.3%를 얻었다. 그는 2012년 총선 때도 대구 수성갑(甲)에서 40.4%를 득표했다. 이 두 가지 모두 88년 이후 대구·경북 지역의 총선과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야권 후보가 거둔 최고 득표율이었다. 이 당선자와 김 후보 모두 성심(誠心)을 다하면 유권자가 응답한다는 평범하면서도 그동안 잊혔던 진리를 보여줬다. 이 불씨를 살려나가기에 따라선 이 당선자의 승리가 한 번의 '기적'으로 끝나지 않을 수 있다. 순천·곡성 주민들은 이날 전 국민을 향해 그런 희망의 불씨를 보여주었다.
(조선일보 사설 2014.7.31 A31면)